“아직 살아있잖아”… 지옥에서 웃는 사람들
['살육의 땅' 수단 다르푸르를 가다]
3만4000명 모인 난민촌엔 ‘비닐 집’ 빼곡
수단 정부 “귀향하라” 총 쏘며 위협해도
“나가면 죽음” 막일하고 굶으면서도 버텨
엘 파셰르(수단 다르푸르)=최준석 특파원 jscho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21세기 들어 세계 최대의 ‘인종 청소’가 자행된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와 이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는 흑인 반란세력들 간 싸움으로 주민 20여 만명이 살해됐다고 유엔과 전 세계 구호단체들은 추산한다. 그 살육의 현장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난민 3만4000여 명이 살고 있는 아부 쇽(Abu Shouk) 난민촌은 이 지역 최대 도시인 엘 파셰르의 북쪽 끝에 있었다.
수단 정부의 난민촌 방문허가증에도 불구하고, 2일 난민촌 주변 검문소들은 계속 “안 된다”고만 했다. 차를 이리저리 돌려 간신히 난민촌으로 들어가자, 북쪽으로는 온통 ‘가축 우리’ 같은 집들뿐이었다. 나뭇가지로 만든 골조 위에 국제구호기구가 제공한 비닐 한 장을 씌운 ‘집’이었다.
아부 쇽 난민촌의 북쪽에 사는 난민 2800명의 옴다(지도자)인 압달라 마디보는 “정부는 난민촌을 떠나라고 밤마다 총을 쏴대는데, 고향에선 잔자위드의 살인과 약탈, 강간이 계속된다”며 “이곳은 생사(生死)를 가르는 마지막 문턱”이라고 말했다. 수단 정부는 난민촌의 존재 자체가 다르푸르 인권유린·학살의 생생한 증거가 되자 난민들의 귀향을 강요한다.
- ▲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지은 집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수단 다르푸르 난민들. 이 곳 아부 쇽 난민촌엔 3만4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엘 파셰르(수단 다르푸르)=최준석 특파원
엘 파셰르시 경계만 벗어나면 폭력이 난무한다. 실제로 나무땔감을 찾으러 난민촌 밖으로 나갔다가 잔자위드 민병대에 강간당한 여성들이 부지기수다. 남자들 역시 난민촌 내 흙벽돌 공장에서 막일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실업자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엘 파셰르 사무소도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차량 3대를 잔자위드에게 빼앗겼다. 시 남쪽으로 20㎞ 떨어진 또 다른 난민촌인 ‘잠잠’ 난민촌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로랑 부케라 WFP 소장은 “유엔 기구들과 민간단체들이 잔자위드와 30여 개 반군 세력에 강탈당한 차량만도 200대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대나 반군 조직이나 모두 이동수단이 필요해 국제기구의 차량을 타깃으로 삼기 때문.
유엔은 12월 말까지 평화유지군 2만6000명을 배치해 다르푸르 지역의 안정화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수단인들이 유엔군에 거는 기대는 그리 높지 않다. 수단 정부가 유엔군 파병은 받아들였지만, ▲군 이동의 사전 통보 ▲평화유지군 통신의 단절 권한 등 사실상 평화유지 업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알 파셰르 대학의 압드자바르 압둘라 교수는 “수단 정부가 다르푸르 사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나서지 않는 한, 유엔군의 무장 수준으로는 민병대나 반군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 최준석 특파원
‘인종 갈등’ 20만명 살해
다르푸르 사태… 2003년 2월부터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49만㎢) 지역에서 벌어진 최악의 학살·인권 유린사태. 심각한 가뭄 속에 토착 흑인(아프리카계) 농민들과 아랍계 유목민이 토지소유권·방목권을 둘러싸고 벌인 대립에서 시작해 인종 갈등으로 발전했다. 아프리카계 반군 세력이 “정부가 아랍계만 지원한다”며 봉기하자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은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가 투입돼 흑인 농민들을 무차별 살해하고 강간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유엔과 세계 구호단체들은 20만명이 살해되고, 2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더 많이 배워야 부모 죽인 사람들에 복수하죠”
['살육의 땅' 수단 다르푸르를 가다] 야간 학교서 만난 난민 학생들
낮엔 일, 밤엔 공부… 90%가 다르푸르 출신
깊은 상처 입은만큼 배움의 의욕 남달라
노천 교실에 수백명 모여 교재도 없이 수업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더 배워서, 형과 아버지를 죽인 그들을 꼭 처벌하고 싶어요.”
무하마드 주마(22)는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에서도 서쪽에 있는 가리아 쿠르꿀라 마을 출신. 그는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낮에는 날품을 팔고, 밤에는 수도 하르툼의 동쪽 주레프 지역에 있는 야간학교 ‘주레프 웨스트 가스펠 초등학교’에서 공부한다. 주마는 2003년 8월 친(親)정부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가 1000여명이 사는 자신의 마을에 왔던 날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와 두 형을 포함해 마을사람 23명이 죽었다. 가까스로 살아 도망친 어머니와 여동생 3명은 주마가 보내는 몇 푼 안 되는 송금에 의존해, 다르푸르의 한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 ▲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위치한 야학‘주레프 웨스트 가스펠 초등학교’에서 다르푸르 지역 출신이 대부분인 학생들이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노천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최준석 특파원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이 학교의 노천 교실에선 십여 개의 형광등 밑에서 수백 여명의 학생들이 책상도 없이 철제 의자에 앉아 그룹으로 나뉘어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한편에선 교사가 읽어내리는 영어 교과서를 학생들이 큰 소리로 따라 읽고, 다른 쪽에선 수학과 기독교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야학(夜學)에선 600명의 남녀가 공부한다. 주마와 같이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간직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사이먼 초울 교장은 “학생의 90%가 다르푸르 출신”이라며 “배우려는 의욕이 매우 강하다.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더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 교회가 이 학교를 설립했던 1984년 당시만 해도, 북부 아랍계와 남부 기독교계 원주민 간의 오랜 내전을 피해 온 남부 수단 출신 기독교인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푸르 인종학살 사태를 피해 온 다르푸르 출신들이 많다.
다르푸르의 서부지역 젤린지에서 잔자위드의 공격으로 부모를 모두 잃은 마리안 오마르 아담(17)도 오후 5시가 되면 이 학교에 온다. 낮에는 남의 집 청소를 해주며 한 달에 100수단파운드(약 5만원)를 번다. 수업은 3교시로, 저녁 8시30분까지 진행된다. 작년 2월부터 다니기 시작해 현재 4학년.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요. 학교에 다니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선생님이 되어 다르푸르에 돌아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2004년 부모와 세 여동생을 잃은 무함마드 무사 아담은 “공부를 하고 배워서 다르푸르에서 같은 일이 재발하는 일을 막겠다”고 말했다.
야학 운영에 대해 수단 정부는 못마땅한 기색이라고 사이먼 교장은 말했다. 그는 “얼마 전에도 정부에서 사람이 나와 ‘왜 서부 출신자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느냐’고 따졌다”고 말했다.
학교는 외부의 지원도 없어, 학생들의 수업료(월 12파운드·약 6000원)로 운영된다. 하지만 학생의 75%가 이따금 수업료를 낼 뿐, 나머지 25%는 전혀 내지 못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대부분이 기독교도인 교사 26명은 작년에 44명의 8학년 학생들을 졸업시켰다. “비를 막을 수 있는 교실이 있다면…. 올해도 여름에 비가 와서 14일이나 수업을 못했다”고 사이먼 교장은 말했다.
거리엔 한국 소형차 물결… 구호활동 한국인은 1명뿐
세계식량계획 윤선희씨, 식량배급 업무 맡아
그나마, 멀리 떨어진 수도 하르툼의 세계식량계획 사무소의 윤선희 특별보좌관<사진>이 수단 내 유일한 한국인 구호인력이다. 월간 보고서를 작성하고, 식량 확보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그의 주업무. 그는 “오지(奧地)에서 굶주린 사람에게 식량을 배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고결한 일이 없는 것 같아, WFP를 택했다”고 말했다.
WFP수단 사무소(소장 일본인 오시다리 켄로)는 다르푸르 주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300만명에게 식량을 지원한다. 윤씨는 “WFP의 수단 프로젝트에 한국정부의 기부금이 지난해 5만 달러(약 4600만원)에서 금년에는 50만 달러로 늘어나 놀랐고, 동료들도 좋은 뉴스라며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남부 다르푸르의 주도(州都) 니얄라에서 유엔 요원의 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최재창씨(해병대 소령 출신)가 있다.
유엔에서 민간단체들과 업무를 조정하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엘 파셰르 사무소의 란다 핫산은 “이곳은 지구촌 최대의 구호활동이 이뤄지는 봉사와 희생의 현장”이라며, “다르푸르 사태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고, 한국 구호단체들이 할 일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중요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