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Korea Human Rights, Refugees, Nuclear, Unification (북한 인권 등)
글수 11,575
이 발없는 다리로!… 기어서 또 탈북
"걸어서 못가면 기어서라도 한국가서 고발하리라…
반드시 북한 인권유린 죄악을 고발하고 말리라"
5년전 탈북했다 잡혀 모진 고문…
두발 잘린 박(朴)씨 모자(母子) 태국도착
구명요청에 한국대사관 묵묵부답
함께온 재일교포는 일(日) 정부서 환영
안준호기자 libai@chosun.com
입력 : 2005.09.20 19:28 09' / 수정 : 2005.09.21 04:23 13'

▲ 북한 보위부의 고문으로 상한 두 발을 절단한 박모씨의 두다리 모습
탈북, 체포, 고문, 두 다리 절단, 재탈북….
탈북한 죄로 북한 보위부의 고문을 받아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여성이 최근 대장정 끝에 태국에 도착,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그녀는 지난 3월 피랍탈북인권연대에 ‘걸어서 못 가면, 기어서라도 한국에 가서 오늘을 고발하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박모(41)씨다. 중국→미얀마→라오스→태국…. 이 수천리 길을 그녀는 잘린 두 다리에 맞지도 않는 싸구려 의족(義足)을 낀 채 목발을 짚고, 발을 절며, 때로는 엉금엉금 네 발로 기었다. 동행자는 아들(19)과 재일교포 1명을 포함한 탈북 여성 2명이다. 재일교포는 지난 1970년대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서 살다가 30여년 만에 탈북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가 처음 탈북을 시도한 것은 2000년 겨울이었다. 함경남도의 무역 관련 사무소에서 일하던 박씨는 아들과 함께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으로 넘어와 온갖 잡일을 하며 연명했다. 박씨는 2003년 12월 자신이 일하던 식당에 아들을 맡기고 네이멍구(內蒙古) 만저우리(滿洲里)로 향했다. 네이멍구 만저우리는 탈북자들이 몽골 국경을 넘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루트 중 하나다.

▲ 두 발을 절단한 박모씨(앞)와 아들 (뒷줄왼쪽)이 중국에서 찍은 사진
박씨는 그러나 중국 공안에 체포돼 작년 1월 북송됐다. 함경북도 보위부원들은 동상으로 부어오른 박씨의 발을 녹이 슨 쇠꼬챙이로 쑤시고 발가락에 족쇄를 채웠으며 사정없이 구둣발로 짓밟았다. 박씨의 발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보위부원들은 “저×은 종아리까지 썩어서 문드러져야 한국으로 못 갈 것”이라며 고문을 계속했다. 하지만 모진 고문도 박씨의 탈북 의지를 꺾지 못했다. 한 달 만에 풀려난 그녀는 2004년 9월 북한에 남아 있던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탈북했다.
‘쌍지팡이를 짚고 굶어서 넘어지고 걷지도 못하여 기면서 중국으로 왔어요. 그때 만난 아들과 친구들은 나의 두 발을 붙잡고 울었지만 난 울지 않았습니다. 그 지옥에서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꿈에도 그리던 아들조차 처음엔 박씨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고문으로 얼굴이 짓이겨진 데다, 피골이 상접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박씨는 중국에서 썩은 두 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박씨 모자는 지난 6월 네이멍구 만저우리에서 몽골행 기차를 타기 위해 창춘을 출발했다. 그러나 5월부터 강화된 단속으로 중국 내 탈북 도우미들이 대거 검거되면서 박씨 모자를 돕기로 했던 도우미도 중국 공안에 체포돼 탈출 기도는 무산됐다.

▲ 박씨가 지난 3월 중국 창춘(長春)에서 "가고 싶어요. 대한민국에!"란 제목으로 피랍탈북인권연대에 보낸 편지의 일부
8월 중순, 박씨 모자는 다시 베이징을 출발해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에 도착, 북송선을 탔던 재일교포 박모(여)씨, 또다른 탈북자 장모(여)씨와 합류했다. 박씨 일행은 지난 6일 밀림과 산악지역을 통과해 미얀마 국경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갑자기 내린 폭우로 도로가 유실되면서 국경을 넘지 못하고 국경지대 은신처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난 8일엔 육로를 버리고 메콩강 지류를 배편으로 건너 미얀마를 거쳐 라오스로 이동했다.
라오스에서도 배편으로 메콩강을 건너 하루 만인 9일 태국에 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박씨 일행은 현재 태국 경찰에 붙잡혀 있다.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사무총장은 “박씨 모자는 태국 이민국으로 이송된 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될 경우 원하는 국가로 보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도 총장은 “일본 정부는 박씨 모자와 함께 탈북한 재일교포 박씨에 대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변을 일본 NGO에 보내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편지에서 “내가 지른 비명소리… 내가 토한 신음소리… 이것은 내가 아니라 현재 북한에서 살고 있는 우리 부모·형제들의 비명소리, 신음소리”라며 “한국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썼다.
[사설]"기어서라도 한국 가서 고발하리라”
[세계일보 2005-09-21 19:47:52]
동상에 걸린 뒤에 고문을 당해 두 발이 절단된 박모(41·여)씨가 최근 아들 등과 함께 태국에 입국해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박씨는 und:#C9E3F7>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심사에서 난민 지위가 인정되면 한국 입국이 허용된다. 박씨가 겪은 고통은 탈북자를 비롯한 북한 주민의 참담한 인권 실태를 또다시 확인시켜 준다.
5년 전 아들과 함께 탈북한 박씨는 중국 공안에 체포돼 지난해 1월 북송된 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보위부원들이 동상 걸린 발을 쇠꼬챙이로 쑤시고 발가락에 족쇄를 채운채 구둣발로 짓밟았다고 하니, 그게 어디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인가. 얼굴마저 짓이겨져 8개월 뒤 중국에서 재회한 아들조차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였다니 고문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된 수많은 탈북자들이 이 같은 고초를 겪는 것을 생각하면 동포로서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다.
박씨는 ‘걸어서 못 가면 기어서라도 한국에 가서 온 세상에 북한 인권 유린 문제를 고발하겠다’는 일념으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재탈북을 감행했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의 참상을 잇달아 고발하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세계 인권기구·단체들이 북한 정부에 인권 개선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애써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경우만 해도 일본 정부는 탈북 재일동포에게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데 반해 한국대사관은 구명요청에 묵묵부답이었던 게 아닌가.
정부는 박씨가 조기 입국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 이젠 ‘조용한 외교’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할 말은 하는’ 적극적인 외교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 동포의 인권 개선에 관해 ‘이해 못할 한국 정부’란 세계의 비판을 더 이상 받아서는 안 된다.
"걸어서 못가면 기어서라도 한국가서 고발하리라…
반드시 북한 인권유린 죄악을 고발하고 말리라"
5년전 탈북했다 잡혀 모진 고문…
두발 잘린 박(朴)씨 모자(母子) 태국도착
구명요청에 한국대사관 묵묵부답
함께온 재일교포는 일(日) 정부서 환영
안준호기자 libai@chosun.com
입력 : 2005.09.20 19:28 09' / 수정 : 2005.09.21 04:23 13'

▲ 북한 보위부의 고문으로 상한 두 발을 절단한 박모씨의 두다리 모습
탈북, 체포, 고문, 두 다리 절단, 재탈북….
탈북한 죄로 북한 보위부의 고문을 받아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여성이 최근 대장정 끝에 태국에 도착,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그녀는 지난 3월 피랍탈북인권연대에 ‘걸어서 못 가면, 기어서라도 한국에 가서 오늘을 고발하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박모(41)씨다. 중국→미얀마→라오스→태국…. 이 수천리 길을 그녀는 잘린 두 다리에 맞지도 않는 싸구려 의족(義足)을 낀 채 목발을 짚고, 발을 절며, 때로는 엉금엉금 네 발로 기었다. 동행자는 아들(19)과 재일교포 1명을 포함한 탈북 여성 2명이다. 재일교포는 지난 1970년대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서 살다가 30여년 만에 탈북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가 처음 탈북을 시도한 것은 2000년 겨울이었다. 함경남도의 무역 관련 사무소에서 일하던 박씨는 아들과 함께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으로 넘어와 온갖 잡일을 하며 연명했다. 박씨는 2003년 12월 자신이 일하던 식당에 아들을 맡기고 네이멍구(內蒙古) 만저우리(滿洲里)로 향했다. 네이멍구 만저우리는 탈북자들이 몽골 국경을 넘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루트 중 하나다.

▲ 두 발을 절단한 박모씨(앞)와 아들 (뒷줄왼쪽)이 중국에서 찍은 사진
박씨는 그러나 중국 공안에 체포돼 작년 1월 북송됐다. 함경북도 보위부원들은 동상으로 부어오른 박씨의 발을 녹이 슨 쇠꼬챙이로 쑤시고 발가락에 족쇄를 채웠으며 사정없이 구둣발로 짓밟았다. 박씨의 발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보위부원들은 “저×은 종아리까지 썩어서 문드러져야 한국으로 못 갈 것”이라며 고문을 계속했다. 하지만 모진 고문도 박씨의 탈북 의지를 꺾지 못했다. 한 달 만에 풀려난 그녀는 2004년 9월 북한에 남아 있던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탈북했다.
‘쌍지팡이를 짚고 굶어서 넘어지고 걷지도 못하여 기면서 중국으로 왔어요. 그때 만난 아들과 친구들은 나의 두 발을 붙잡고 울었지만 난 울지 않았습니다. 그 지옥에서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꿈에도 그리던 아들조차 처음엔 박씨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고문으로 얼굴이 짓이겨진 데다, 피골이 상접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박씨는 중국에서 썩은 두 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박씨 모자는 지난 6월 네이멍구 만저우리에서 몽골행 기차를 타기 위해 창춘을 출발했다. 그러나 5월부터 강화된 단속으로 중국 내 탈북 도우미들이 대거 검거되면서 박씨 모자를 돕기로 했던 도우미도 중국 공안에 체포돼 탈출 기도는 무산됐다.

▲ 박씨가 지난 3월 중국 창춘(長春)에서 "가고 싶어요. 대한민국에!"란 제목으로 피랍탈북인권연대에 보낸 편지의 일부
8월 중순, 박씨 모자는 다시 베이징을 출발해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에 도착, 북송선을 탔던 재일교포 박모(여)씨, 또다른 탈북자 장모(여)씨와 합류했다. 박씨 일행은 지난 6일 밀림과 산악지역을 통과해 미얀마 국경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갑자기 내린 폭우로 도로가 유실되면서 국경을 넘지 못하고 국경지대 은신처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난 8일엔 육로를 버리고 메콩강 지류를 배편으로 건너 미얀마를 거쳐 라오스로 이동했다.
라오스에서도 배편으로 메콩강을 건너 하루 만인 9일 태국에 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박씨 일행은 현재 태국 경찰에 붙잡혀 있다.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사무총장은 “박씨 모자는 태국 이민국으로 이송된 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될 경우 원하는 국가로 보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도 총장은 “일본 정부는 박씨 모자와 함께 탈북한 재일교포 박씨에 대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변을 일본 NGO에 보내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편지에서 “내가 지른 비명소리… 내가 토한 신음소리… 이것은 내가 아니라 현재 북한에서 살고 있는 우리 부모·형제들의 비명소리, 신음소리”라며 “한국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썼다.
[사설]"기어서라도 한국 가서 고발하리라”
[세계일보 2005-09-21 19:47:52]
동상에 걸린 뒤에 고문을 당해 두 발이 절단된 박모(41·여)씨가 최근 아들 등과 함께 태국에 입국해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박씨는 und:#C9E3F7>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심사에서 난민 지위가 인정되면 한국 입국이 허용된다. 박씨가 겪은 고통은 탈북자를 비롯한 북한 주민의 참담한 인권 실태를 또다시 확인시켜 준다.
5년 전 아들과 함께 탈북한 박씨는 중국 공안에 체포돼 지난해 1월 북송된 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보위부원들이 동상 걸린 발을 쇠꼬챙이로 쑤시고 발가락에 족쇄를 채운채 구둣발로 짓밟았다고 하니, 그게 어디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인가. 얼굴마저 짓이겨져 8개월 뒤 중국에서 재회한 아들조차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였다니 고문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된 수많은 탈북자들이 이 같은 고초를 겪는 것을 생각하면 동포로서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다.
박씨는 ‘걸어서 못 가면 기어서라도 한국에 가서 온 세상에 북한 인권 유린 문제를 고발하겠다’는 일념으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재탈북을 감행했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의 참상을 잇달아 고발하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세계 인권기구·단체들이 북한 정부에 인권 개선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애써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경우만 해도 일본 정부는 탈북 재일동포에게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데 반해 한국대사관은 구명요청에 묵묵부답이었던 게 아닌가.
정부는 박씨가 조기 입국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 이젠 ‘조용한 외교’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할 말은 하는’ 적극적인 외교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 동포의 인권 개선에 관해 ‘이해 못할 한국 정부’란 세계의 비판을 더 이상 받아서는 안 된다.







북한관련